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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도 알기 쉬운, 경제, 금융지식 스물여덟번째 시간입니다.
이번시간에는 ‘두 번의 작은 협정, 세계를 집어삼킨 월스트리트의 탄생 이야기!!’ 란
주제로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경제, 금융 지식은 어렵고, 나와는 맞지 않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재밌게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도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흥미로운 글로 시작해 볼까 하는데요~
그냥, 맘편히, 재밌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
뉴욕 맨해튼 남단에 위치한 월스트리트. 높이 솟은 마천루들 사이로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이곳은 명실상부한 세계 금융의 심장입니다.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이 지어진 배경도 나름 재미있는데요~ 지금의 거창한 이미지와는 달리,
생각보다 훨씬 소박하고 단순한 역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지금의 뉴욕 맨해튼 남단은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세운 작은 식민지인 뉴암스테르담 이었구요.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주변 인디언 부족과 영국의 위협에 늘 불안해 했었으며,
그들은 외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마을 북쪽 경계에 벽(Wall)을 세워 방어선을 구축 했다 하네요~
시간이 지나 벽은 없어졌지만, 그때의 거리를 생각하며, 벽의 거리(Wall Street)라 불려졌고,
그 허름했던 거리가 현재의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된겁니다. ^^
이런면에서 역사와 더불어 생각해 보면 참 재밌는거 같아요 ㅎ
(아래 자세히 다시 설명)
자 그럼, 본격적으로 월스트리트 탄생이야기에 대해 알아 볼까요?
읽을 준비 되셨으면, 바로 시작 하겠습니다~ ^^

월스트리트의 역사를 바꾼 두 가지 중요한 협정이 있는데요~
버튼우드 협정과 브레턴우즈 협정입니다.
이 두 협정을 중심으로 월스트리트가 어떻게 세계 자본을 움직이는 중심지가 되었는지
주의깊게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씨앗을 뿌리다: 월스트리트의 태동
월스트리트의 시작은 오늘날의 번화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 기원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두에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배경을 살짝 설명해 드렸는데요~
전제척으로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 다시 한번 언급하겠습니다.
1. 네덜란드 식민지, 작은 방어벽
1600년대 초, 네덜란드는 북미에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라는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당시 이곳의 북쪽 경계에는 인디언 부족의 습격과 영국군의 위협을 막기 위해 나무로 된 방어벽이 세워졌는데, 이 벽이 있던 거리가 바로 '월 스트리트(Wall Street)'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방어벽에 불과했지만, 벽을 따라 상인들이 모여들며 이곳은 자연스럽게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월스트리트는 공식적인 시장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물건과 정부 채권이 거래되는 비공식적인 장터에 가까웠습니다. 사람들은 나무 그늘 아래나 선술집에 모여 주식과 채권을 사고팔았고, 정해진 규칙이 없어 사기와 불신이 만연했습니다.
2. 버튼우드 협정: 작은 시작, 거대한 미래
18세기 말, 미국 독립전쟁이 끝난 후 미국 경제는 불안정했습니다. 정부가 전쟁 자금을 위해 발행했던 채권들이 거래되면서 투기 열풍이 불었고, 중개인들의 신뢰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질서 있는 시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1792년 5월 17일, 월스트리트의 한 플라타너스 나무(buttonwood tree) 아래에서 24명의 증권 중개인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비공식적인 모임을 넘어,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기로 합의합니다. 이 역사적인 합의가 바로 '버튼우드 협정(Buttonwood Agreement)'입니다.
이 협정의 내용은 매우 간단했지만, 그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 회원 간의 거래: 24명의 중개인들은 서로에게만 증권을 사고팔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는 비회원의 참여를 막아 시장의 신뢰를 높였습니다.
□ 고정된 수수료: 이들은 모든 거래에 대해 0.25%의 고정된 수수료를 받기로 합의했습니다.
□ 투명성과 신뢰: 이 합의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형성하여 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시장의 혼란을 잠재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버튼우드 협정은 24명의 중개인이 모인 작은 사교 모임처럼 보였지만,
이것이 바로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 NYSE)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이 협정으로 인해 월스트리트는 무질서한 장터에서 규칙과 신뢰가 있는
공식적인 증권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성장의 기반을 다지다: 남북전쟁과 산업혁명
버튼우드 협정으로 기반을 다진 월스트리트는 이후 미국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타고 거침없이 성장합니다.
1. 남북전쟁: 금융의 필요성이 폭발하다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사적, 경제적 사건이었습니다. 전쟁은 막대한 비용을 요구했고, 미국 정부는 이를 충당하기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야 했습니다.
월스트리트는 이 국채를 판매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남북전쟁 기간 동안 국채 발행과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이 주식과 채권 시장에 뛰어들었고, 월스트리트는 명실상부한 미국의 금융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 철도와 산업 시대의 동력
남북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철도 건설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합니다. 서부로 향하는 철도를 놓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고, 이 자금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을 통해 조달되었습니다.
J.P. 모건(J.P. Morgan)과 같은 거물 투자은행가들은 기업의 주식과 채권을 인수하여 일반 대중에게 판매하는 언더라이팅(underwriting)방식을 통해 산업 자금을 공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월스트리트는 단순한 증권 시장을 넘어, 미국 산업의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세계 금융의 패권을 거머쥐다: 브레턴우즈 협정
월스트리트가 미국 내 금융의 심장이 되는 동안, 세계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 혼란은 월스트리트가 세계 금융의 패권을 거머쥘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습니다.
1. 1차 세계대전과 달러의 부상
1차 세계대전 이전, 세계 기축통화는 영국 파운드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재정을 파탄시켰고, 전쟁의 승자였던 미국은 전 세계에 돈을 빌려주는 채권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달러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2. 2차 세계대전과 새로운 질서의 필요성
2차 세계대전은 유럽과 아시아를 초토화시켰고,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금본위제와 무질서한 변동 환율 시스템이 실패했음을 깨달았고,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를 만들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3. 브레턴우즈 회담: 승자와 패자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라는 작은 산간 마을에 44개국 대표가 모였습니다. 이들은 전후 세계 경제를 재건하고 국제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한 회담을 열었습니다.
□ 케인스의 구상: 영국 대표였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방코르(Bancor)'라는 새로운 국제 통화를 만들고, 국제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모든 국가가 동등한 권한을 가지는 시스템을 제안했습니다.
□ 미국의 구상: 하지만 미국 대표였던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당시 전 세계 금 보유량의 3분의 2를 갖고 있었고, 유일하게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강대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계획은 "미국 달러를 금에 고정하고, 다른 모든 국가의 통화를 미국 달러에 고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담의 승자는 미국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의 구상이 채택되면서
역사적인 '브레턴우즈 협정(Bretton Woods Agreement)'이 탄생했습니다.
4. 브레턴우즈 협정의 결과와 월스트리트의 지위
브레턴우즈 협정은 월스트리트의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 달러의 기축통화화: 미국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고, 모든 국제 거래는 달러를 기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월스트리트로의 자본 유입: 전 세계 중앙은행과 기업들은 달러를 보유해야 했고, 달러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투자하기 위해 월스트리트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전 세계의 자금이 월스트리트로 모이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버튼우드 협정이 월스트리트를 '미국 금융의 심장'으로 만들었다면,
브레턴우즈 협정은 월스트리트를 '세계 금융의 심장'으로 격상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브레턴우즈의 종말과 현재의 월스트리트
브레턴우즈 협정은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단하면서 붕괴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종말이 월스트리트의 지위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습니다.
□ 이미 굳어진 지위: 이미 수십 년간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금융 인프라,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 그리고 최고 수준의 인적 자원은 쉽게 대체될 수 없었습니다.
□ 달러의 관성: 비록 금에 고정되지는 않았지만, 달러는 이미 국제 무역과 금융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월스트리트는 더 이상 금본위제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의 자본이 모이고, 가장 혁신적인 금융 상품들이 만들어지며,
세계 경제의 흐름이 결정되는 중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맺음말
월스트리트의 역사는 한 작은 방어벽에서 시작해, 버튼우드 협정을 통해 신뢰를 쌓고,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협정은 단순한 계약을 넘어, 월스트리트의 운명을 바꾸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 경제 질서를 형성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월스트리트는 때로는 탐욕과 위기의 상징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이곳이 어떻게 세계 금융의 심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이렇게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 탄생 배경에 대해 알아 보았는데~
나름 바쁘시간에 작성한 글이라,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우리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